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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 니체, 데리다의 눈물 / 문체가 없는 글은 죽은 글이다. 그 사람 고유의 문체가 있어야 한다. 글쓴 이가 누구인지 적혀 있지 않아도, '이건 누구의 글이다' 하고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글을 쓴 것이다. 살아있는 글을 쓴 것이다. 문체가 글의 영혼이다. 문체가 없는 글은 영혼이 없는 글이다. 문체가 곧 글의 영혼인 것은, 문체(文體)는 그 글(文)의 몸(體)이기 때문이다. 몸이 없다면 죽은 것이다. 영혼이 없는 것이다. (몸이 없는 데도 영혼이 있다고 보는 생각은 영지주의(Gnosticism)다. 이단사설(異端邪說)이다.) 몸이 없는 글, 문체가 없는 글, 그건 유령이다. 허깨비다. 헛 것이다. 죽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이있는> 글을 읽어야 한다. 살려면, 살아있는 글을 읽어야 한다. 말은 맞는 말인데 죽은 글이 있고, 말은 틀린 말이지만 산 글이 있다. 살려면 산 글을 읽어야 한다. 니체의 말은 틀렸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신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죽었다고 말하는 니체의 글을 보라! 살아 있다. 펄펄 살아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당연히,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철학자들, 도덕가들, 설교자들의 시들어 빠진 말들보다 우리를 더 신에게 가까이 데려다 준다. 왜냐하면 신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에 대한 말이라면서 (theo-logy, onto-theology), 살아있지 않고 죽은 말이라면, 그 말은 틀린 말이다. 무조건 틀린 말이다. 죽은 말은 결코 맞을 수 없는 말이다. 죽은 말로 어떻게 살아있는 분을 맞추겠는(correspondence)가? 살아있는 말만이, 부르짖음만이, 고함만이, 외침만이, 비명소리만이, 울음소리만이, 살아계신 신의 귀에 이르고, 신은 "내가 너의 눈물을 보았다" 말씀하시며 구원해주신다. 인간을. 죄인을. Shared from Google K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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