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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목사님께, 아버님 유품을 정리하시다가, 목사님 석사 논문을 아버님께서 읽으시고 남기신 것으로 보이는 메모를 발견하셨다지요. '칼빈주의' 아마 아버님께서는 그 말이 생소해, 모르는 단어 적어 놓듯이 당신 노트에 적어놓으신 것 같다고 하셨지요. 목사님, 왜 우리는 '칼빈주의' 같은 그런 말들에 대해 배우러 이렇게 오랜 세월 공부하고, 이렇게 멀리까지 유학을 와, 아들노릇, 가장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신학을 잘 배워 '신학이 있는' 설교와 목회를 통해 교회를 바로 세우고 성도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자 했던 우리의 선택과 확신, 정말 옳은 것이었을까요? 누가 신학에 귀 기울이나요? 교회성장학이 아닌, 성공학이 아닌, 행복(심리)학이 아닌, 과학이 아닌 신학의 말에. 목사님도 "일주일이면 끝!"이라는 확신에 찬 의학자의 말을 듣고 신뢰하셨다지요. 누군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공부는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에게서 초년생 때의 자신감을 앗아가고, "해답/비법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 앞에서, "신학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조롱하는 이들 앞에서 우리는 그저 겸연쩍은 미소나 짓고 서 있을 뿐이지요. "철저히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괴감에 허우적거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목사님, 저는 목사님께서 적어 내려가신 큰 슬픔의 기록에서 저를 제 못난 감상의 늪에서 건져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일주일이면 끝!"이라고 더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던 의사, 결국에 가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요--"심삼 시 이십사 분." 얼마나 분명하고, 과학적이고, 정확한 말인지요! 그러나 제 아무리 분명하고 과학적이고 정확한 말이라도, 목사님, 네, 그 말은 '사망 선고'의 말에 지나지 않지요. 죽은 사람을 두고 죽었다 말해주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소망이 없음을 보여주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죽음의 권세 아래 처해 있음을 말해주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의학이, 과학이, 이 세상 학문이 목소리 내리 깔고 진술하는 그 '사망'의 말 뒤에, 목사님은, 우리는 무슨 말씀을 듣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천지를 진동시키는 이 우렁찬 음성! 이 '말씀'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지요.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처세술이나, 성공학이나, 행복학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죽음을 연습”할 수 있을 뿐인 이 세상 철학이 감히 꿈도 꾸어보지 못한 ‘부활’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벌써부터 지금 여기에 역사하고 있는 그 부활생명사건의 전조와 조짐 앞에서 떠는 사람이 되기 위해. 떠느라, 떨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소용되는 말, 말이 되는 말은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떨리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저 앞을 가리키며 “하나님이 오고 계시다!” 말할 줄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끓는 신학도가 되기 위해... 그러니, 목사님, 우리 낙심하지 않도록 해요. 날마다 더욱 무력해지고 무능해져가는 우리이지만, 우리를 ‘말씀을 섬기는’ 사역자, 신학도의 길로 부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 무력과 무능을 통해 당신의 전능을, 당신의 부활권능을 나타내 보이실 것임을 우리, 다시 믿도록 해요. 우리가 '다시' 믿을 때 이 세상에는 '다시' 사신 우리 주님의 부활의 증거가 하나 더 많아지는 것이죠. 우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으냐?" 물으시는 주님께 '예, 믿나이다, 주님!" 하고 대답하도록 해요. + 주님의 위로가 큰 슬픔을 당하신 가족 분들 모두에게, 목사님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Shared from Google K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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