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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에는 "젊은이"가 단 두 번 등장합니다. 먼저, 다 벗고 도망갔다는 젊은이 (막 14:51-52).. 제자의 길을 가지 않으려고, 옷까지 다 벗어 던진 사람, 그야말로 전부 다 버린 사람인데, 마가복음서 첫 장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며 그물도 버리고 아버지도 버리고, (막1:16-20) 그야말로, 전부를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던 제자들의, 그 첫 모습과 참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아마, 다 벗고 도망간 젊은이 이야기를 통해서,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따라가는"(막 14:51) 제자가 되겠다며 뜨겁게 결심했던 우리 자신의 현 모습을 한번 돌이켜 보라고 초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다"면, "벌거벗은"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마가복음의 두번째 "젊은이"는 빛나는 옷을 입은 젊은이입니다. 흰 옷을 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고 있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그가 살아나셨다!"--그 젊은이 말입니다(막 16:5). 다른 복음서들은 "천사"라고 말하고 있는 이를 마가복음은 "젊은이"--젊은이처럼 보이는 천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두 "젊은이"를 나란히 두고 한번 깊이 생각해보라는 초대가 아니었을까요?: 벌거벗고서 제자의 길에서 도망가고 있는 젋은이--초라하기 짝이 없는. 흰 옷, 빛나는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부활복음을 전하고 있는 젊은이--영광스럽기 그지 없는. 이런 해석은, 벌거벗은 젊은이를 "마가"였을 것이라고 본 교회의 오랜 전승과 --꼭 같지는 않지만--잘 어우러 집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마가가 선교여행 중에 (아마도 고난과 고생 때문에) 자신들(일행)을 "버리고 떠났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36-41). 제자의 길을 가다가 십자가를 만나자 도망가버린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그런 마가를 다시 선교여행에 데려 가기를, 동역자 삼기를 거부합니다.) 어쩌면 마가는 후에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체포 당시 있었다고 전해지는 한 사소해 보이는 에피소드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젊은이가 청년 마가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겠지만...) 마가는 후에 회개하고, 다시 제자의 길을 갔습니다. 마가는 사도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후에 옥에 갇혀 있을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서신에 썼습니다(딛후 4:10) 사랑하는 동역자가 보고 싶어서 였을 것입니다. 마가를 두고 바울은 "나의 일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일"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복음전파 사역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마가는 부끄러움을 벗고 영광스런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 벌거벗고 도망가는 젊은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마가... 부끄럽다는, 부끄러워 우는 그를 생각해봅니다. ... 새벽에, 다시 일어나 길을 떠나는, 제자의 길을 떠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부끄러워 우는 그를 찾아와 그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주었을 주님, 부활하신 주님의 그 손을 상상해 봅니다. 그 못자국 난 손을 마음에 그려봅니다. Shared from Google K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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